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니엘 베르누이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다니엘 베르누이는 네덜란드 흐로닝언의 저명한 수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. [[베르누이 가문]]은 원래 [[합스부르크]] 네덜란드의 [[안트베르펜]] 출신이었으나 [[스페인]]의 [[개신교]] 박해를 피해 이민을 왔다. [[프랑크푸르트]]에서 잠시 머물다 스위스 [[바젤]]로 이사하였다. 다니엘은 [[요한 베르누이]]의 아들이자 [[야코프 베르누이]]의 조카였다. 다니엘에게는 니클라우스와 요한 2세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. W. Rouse Ball은 "지금까지의 베르누이 2세들 중 가장 능력자"라고 그를 평가하였다. 다니엘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. 두 사람 모두 [[파리 대학교]]에서 열린 과학 경연대회에서 공동 1위에 올랐는데 아들 다니엘과 비교되는 '불명예'를 견디지 못한 아버지 요한은 다니엘을 집에서 내보냈다. 요한 베르누이는 또한 다니엘의 저서 <유체역학>을 표절하여 <수력학>을 지었는데 출판날짜를 앞당기는 조작을 하기도 하였다. 다니엘이 화해하려 하였으나 아버지는 끝내 거절하였다. 학창시절 아버지 요한 베르누이는 가난하게 살게 될 수학보다는 사업을 하도록 격려했다. 하지만 다니엘은 거부하고 수학을 공부하였다. 그가 후에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사업을 배우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다시 그에게 [[의학]]을 공부하라고 하였다. 아버지가 그에게 수학을 개인 교습시켜준다는 조건하에 동의하고 한동안 그렇게 지냈다. 다니엘은 바젤, [[하이델베르크]], [[스트라스부르]]에서 의학을 공부하였고, 1721년에 [[해부학]]과 [[식물학]]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. 1738년 쓴 유명한 저서 《유체역학 流體力學》에서는 ‘베르누이의 정리’를 논술하여, 유체역학의 정식화(定式化)를 시도했다. 또 열(熱)의 본성에 관해서는, 그것이 분자의 운동에 의한다는 설을 주장하여 기체분자운동론의 선구자가 되었고, [[보일의 법칙|기체법칙]]을 도출하였다. 아버지가 죽은 후, 파리 과학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다. 그는 [[레온하르트 오일러]]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가까운 친구였다. 그는 1724년 수학과 교수로서 [[상트페테르부르크]]로 갔지만 그곳에서 불행한 삶을 보내다가 1733년 병을 얻고 떠나왔다. 바젤대학으로 돌아와서 죽을 때까지 의학, 형이상학, 자연철학의 교수로 지냈다. 1750년 5월에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